OTT를 켜고 뭘 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손이 가는 대로 클릭한 드라마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저도 《기리고》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학원 공포물이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첫 화를 틀었는데,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스마트폰 화면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서늘한 여운이 남아, 정리해두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디지털 저주가 만든 공포의 구조 《기리고》의 핵심 설정은 스마트폰 앱을 매개체로 작동하는 저주입니다.코딩 동아리 학생 시원과 무당의 딸 혜령이 사주(四柱)를 데이터값으로 입력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앱을 함께 만드는데, 여기서 사주란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가지 정보를 기반으로 개인의 운명을 분석하는 동아시아 전통 점술 체계를 말합니다.저는 개인적으로 이 운명 정보가 디..
임지연 배우가 드라마 한 편으로 자신의 연기 스펙트럼을 완전히 새로 증명해 냈습니다.SBS 금토드라마 《멋진 신세계》는 방영 초반부터 "예능보다 더 웃기다"는 시청자 반응이 쏟아지고 있는데, 저 역시 첫 회를 보자마자 이 드라마가 단순히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선,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조선 시대 악녀 영혼이 빙의된 무명 배우라는 설정이 자칫 황당하게 흐를 수도 있었음에도, 주연 배우들의 탄탄한 딕션과 발성이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를 기품 있게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임지연, '더 글로리'를 넘어선 연기 스펙트럼 《더 글로리》의 박연진은 워낙 강렬하고 서늘한 악역의 정석을 보여주었기에, 그 인생 캐릭터 이후 차기작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따라붙는 건 어쩔..
부모를 130번 찌른 사이코패스가 빌런이 아니라 설계자로 등장하는 드라마, 본 적 있으십니까?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각도시》를 처음 접했을 때 저도 이 한 줄 설정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우민호 감독 특유의 묵직한 서사에 지창욱, 도경수라는 두 배우의 에너지가 더해지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경수의 사이코패스 빌런 연기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도경수 배우의 연기 방식이었습니다.보통 빌런이라고 하면 험악한 표정, 터져 나오는 고함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안요한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맑고 차분한 눈빛으로, 마치 날씨 얘기를 하듯 "사람을 130번쯤 찔렀나요?"라는 대사를 던지는 그 장면에서 저는 진짜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캐릭터의 핵심은 사이코패스(Psy..
최근 OTT 시장에서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작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도덕적 딜레마를 던지는 드라마를 보며 손에 땀을 쥐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저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 시즌 1》을 시청하면서 악의 축에 서 있는 주인공 백기태를 끝까지 응원하며 몰입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드디어 2026년 하반기 공개를 앞두고 공개된 시즌 2 예고편을 접한 순간, 저는 "이번에는 단순한 후속작 수준을 넘어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판이 짜였구나"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전작의 인기에 기대어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극을 이끄는 서사 구조와 인물 간의 역학 관계가 완전히 리부트되었기 때문입니다. 9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관계의 역전과 장르적 묘미 시즌 1이 방영될 당..
살인마가 만든 치료제라면, 당신은 그 약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저는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채로 〈블러디 플라워: 의대생 자경단〉첫 화를 봤습니다.그리고 한 화가 끝날 때마다 "이건 내가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을 반복하며 결국 정주행을 끝내버렸습니다.선과 악의 경계를 이토록 불편하게 흔들어놓는 드라마가 최근에 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성동일이 국밥집 아버지를 지웠을 때 생기는 일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캐스팅 발표를 보고도 성동일이 이 역할에 어울릴지 반신반의했습니다.〈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워낙 강렬하게 각인된 이미지가 있다 보니, 냉소적인 변호사를 연기한다는 게 머릿속에서 잘 그려지질 않았습니다.그런데 실제로 보니 완전히 다른 문제였습니다.오히려 그 친근한 이미지가 배신당하는..
넷플릭스 신작 〈로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손이 떨렸습니다. 디피(D.P.)를 처음 봤을 때 그 먹먹함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 한준희 감독이 이번엔 한일 연쇄 살인 스릴러로 돌아온다니요. 게다가 손석구라는 이름 석 자까지. 올 하반기 정주행 1순위는 이미 정해진 것 같습니다. 줄거리 : 도쿄에서 시작된 살인, 그리고 한국어 메시지 이야기는 도쿄 한복판에서 사지가 잔혹하게 비틀린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평범한 살인 사건이라면 일본 경찰 선에서 끝났겠지만, 현장에 남겨진 단서가 문제였습니다.피해자가 숨지기 직전 남긴 다잉 메시지(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직전 범인의 신원이나 결정적 단서를 담아 남긴 기호나 문구)가 하필이면 한국어로 적혀 있었던 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도 똑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