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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고 (디지털 저주, 신인 배우, 오컬트)

by momonemoney 2026. 6. 16.

넷플릭스 드라마 기리고
넷플릭스 드라마 기리고

 

뻔하지 않은 공포의 탄생, 디지털 오컬트 드라마 《기리고》 리뷰

 

OTT를 켜고 뭘 볼까 고민하다가 그냥 손이 가는 대로 클릭한 드라마가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기리고》를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학원 공포물이겠거니" 하고 별 기대 없이 첫 화를 틀었는데,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스마트폰 화면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서늘한 여운이 남아, 정리해두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디지털 저주가 만든 공포의 구조

 

《기리고》의 핵심 설정은 스마트폰 앱을 매개체로 작동하는 저주입니다.

코딩 동아리 학생 시원과 무당의 딸 혜령이 사주(四柱)를 데이터값으로 입력하면 소원이 이루어지는 앱을 함께 만드는데, 여기서 사주란 태어난 연·월·일·시의 네 가지 정보를 기반으로 개인의 운명을 분석하는 동아시아 전통 점술 체계를 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운명 정보가 디지털 코드로 치환되어 서버에 올라가는 순간, 저주가 실행된다는 발상이 꽤 섬뜩하게 느껴졌습니다.

 

드라마에서 이 앱은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24시간 내에 의뢰인 혹은 주변인의 목숨을 가져가는 계약 구조로 작동합니다.

이걸 보면서 떠오른 개념이 바로 내러티브 인과율(Narrative Causality)입니다. 내러티브 인과율이란 이야기 안에서 원인과 결과가 필연적으로 맞물려 등장인물의 선택이 파국으로 귀결되는 서사 법칙을 뜻합니다.

《기리고》는 이 법칙을 앱이라는 디지털 인터페이스에 이식함으로써, 시청자가 "다음 희생자는 누구인가"를 예측하면서도 멈출 수 없는 긴장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주의 확장 방식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오컬트에서 부적이나 굿은 특정 공간이나 물체에 종속됩니다. 그러나 《기리고》의 저주는 네트워크를 타고 전송되고, 기기만 있으면 어디서든 재접속이 가능합니다.

저주가 데이터처럼 복사되고 공유된다는 이 설정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스마트폰이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침투하기 쉬운 공간이라는 역설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실제로 문화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기기와 인간의 심리적 경계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인간 결합 현상이 공포 콘텐츠 소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됩니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만든 날것의 현실감

저는 처음에 캐스팅 명단을 보고 낯선 이름들 때문에 살짝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그 낯섦이 오히려 작품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전소영, 김시아, 강미나 배우를 포함한 신인들의 연기는 정제되지 않은 대신, 그 거칠기 때문에 훨씬 실재하는 공포를 전달했습니다.

 

공포 장르에서 중요한 연기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입니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란 표정, 눈빛, 호흡, 몸의 긴장 등 대사 외의 수단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미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했다면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연기를 평가하려 들겠지만, 낯선 얼굴들이 나오면 그런 평가 필터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덕분에 저는 강미나가 연기하는 나리를 그냥 '나리'로 받아들였고, 그 캐릭터가 무너질 때 진짜로 가슴이 무거워졌습니다.

 

특히 형욱 역의 이효제 배우가 첫 희생자로 퇴장하는 장면은, 제가 직접 보면서 예상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캐릭터에 정이 들기 전에 사라진다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 안에 비극의 무게를 충분히 쌓아 올렸습니다.

이는 캐릭터와 배우의 이미지 간 격차, 즉 퍼소나 간극(Persona Gap)이 최소화되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퍼소나 간극이란 배우의 기존 공적 이미지와 극 중 캐릭터 사이의 거리를 뜻하는데, 이 간극이 클수록 시청자는 극에서 이탈하기 쉽습니다. 신인 배우들은 기존 이미지가 없으므로 이 간극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년 OTT 콘텐츠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신인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장르물의 국내 시청 완주율이 기성 배우 중심 작품 대비 평균 12% 높게 나타났습니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기리고》가 딱 그 사례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은근하게 조여드는 공포와 장르의 융합

《기리고》를 보면서 제가 가장 자주 느낀 감정은 갑작스러운 자극이 아니라 "서서히 숨이 막혀오는 감각"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이 드라마를 일반적인 점프 스케어(Jump Scare) 방식의 공포물과 확연히 구분 짓습니다. 점프 스케어란 갑작스러운 시각·청각 자극으로 순간적인 공포 반응을 유발하는 연출 기법을 말하며, 많은 저예산 공포물이 이 방식에 의존합니다.

《기리고》는 손쉬운 방법 대신, 학교라는 공간이 비틀려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쌓아 올렸습니다.

 

무당 햇살과 방울의 퇴마 시퀀스에서 전통 무속 의식인 굿(Exorcism Ritual)이 스마트폰 화면과 교차 편집되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 전반에 깔린 서사 구조가 장르 혼합(Genre Hybridization) 전략을 매우 의도적으로 설계했다고 분석합니다. 장르 혼합이란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인 장르 문법을 하나의 작품 안에서 충돌 또는 융합시키는 창작 방식입니다.

학원물 특유의 소외감과 한국 무속의 인과응보 공포를 디지털 공간에서 정확히 합선시킨 것이지요. 

 

마지막 쿠키 영상에서 저주가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장면은, 단순한 기대보다 "이 설정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공포물을 좋아하지만 매번 비슷한 귀신 이야기에 지쳐있다면, 《기리고》는 생각보다 오래 머릿속에 남는 경험을 줄 것입니다.

자극적인 장면보다 공기로 누르는 공포가 더 잘 맞는 분께 특히 추천합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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