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옥씨부인전》의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흔한 '신분 세탁 사기극'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노비가 양반 흉내를 내며 위기를 모면한다는 설정이 사극 장르에서는 꽤 익숙한 클리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화를 보고 나서 제 모든 편견은 보기 좋게 무너졌습니다.구덕이가 포졸들 앞에서 대명률 조항을 막힘없이 줄줄 읊어대며 당당하게 법리를 따지는 장면을 보며, 전율이 돋아 입을 다물지 못했던 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건 단순한 '말발'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으로 익힌 생존의 지혜 그 자체였습니다. 조선 신분제 속에서 피어난 천재, 구덕이 드라마의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선 시대의 양천제(良賤制)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양천제란 사회 구성원을 양인..
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의 한국판 제작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습니다.원작 소설과 일본 영화판을 워낙 좋아했기에, 과연 한국적인 정서가 이 애틋한 이야기를 어떻게 재해석해낼지 궁금함이 컸거든요. 관람 후 느낀 점은 이 영화가 단순히 원작을 따라가는 리메이크가 아니라, 한국만의 감성으로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웰메이드 로맨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수의 밤바다가 선물한 깊고 아련한 낭만 가장 먼저 인상 깊었던 건 영화의 배경인 여수였습니다.원작이 주는 청량하고 아기자기한 느낌과는 또 다른, 깊고 아련한 정통 멜로의 분위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습니다.신덕해변의 낮 풍경부터 밤을 수놓는 여수해상케이블카의 야경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여수의 풍경을 보면서 '매일 기억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