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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흔히 '히어로물'이라고 하면 세상을 구하는 거창한 액션과 화려한 초능력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제가 최근 정주행한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그런 통념을 완전히 뒤엎어버립니다.

    초능력이 축복이 아닌, 오히려 현대인의 병든 내면을 투영하는 거울처럼 작동한다는 설정 자체가 무척 신선했습니다.

    드라마 소개글을 보자마자 "이건 무조건 봐야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결과적으로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판타지적 설정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내면의 상처를 깊이 있게 어루만지는 힐링 드라마였기 때문입니다.

     

     

     

    초능력과 현대 질병이 만나는 독특한 설정

     

    이 드라마가 다른 판타지물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지점은 초능력의 작동 원리입니다.
    복 씨 가문은 대대로 예지몽, 과거 회귀, 비행, 독심술 같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지만, 이 능력들은 철저하게 조건부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 조건들이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과 맞닿아 있다는 점입니다.

     

    • 예지몽(Precognitive Dream) : 잠든 상태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을 미리 경험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할머니 복만흠(고두심 분)은 이 능력을 가졌지만, 극심한 불면증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해 능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여기서 불면증이란 단순히 잠을 못 자는 게 아니라 수면의 질 자체가 무너진 상태로, 국내 성인의 약 10~15%가 만성 불면증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대한수면학회).

     

    • 과거 회귀(Time Regression): 행복했던 기억으로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복귀주(장기용 분)는 이 능력을 가졌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찾아온 우울증으로 인해 행복했던 기억 자체가 차단되어 능력을 잃었습니다.

     

    • 비행(Flight): 하늘을 나는 능력이지만, 복동희(수현 분)는 비만이라는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더 이상 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가 직접 시청해 보니, 이 설정이 단순한 스토리 장치가 아니라 드라마 전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능력이 있어도 쓰지 못하는 상태, 이게 결국 우리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누구나 한 시절엔 빛나던 '히어로'였지만, 어른이 되고 세상의 풍파에 지쳐 그 능력을 잊거나 잃어버린 경험 하나쯤은 다들 있지 않습니까? 저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그 상실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초능력이 '특별함'이 아닌 '결핍'의 상징으로 작동하며, 능력의 회복이 곧 진정한 심리적 치유와 맞닿아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장기용과 천우희가 만들어낸 감정선의 미학

     

    제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건 복귀주라는 캐릭터였습니다.

    행복했던 기억으로만 과거 회귀가 가능한 능력자가, 딸이 태어나던 날 발생한 화재 사고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이후 깊은 우울의 늪에 빠져드는 서사는 너무나 애절했습니다.

    장기용 배우는 이 역할을 과하지 않게, 눈빛만으로 무기력함과 죄책감을 동시에 표현했습니다.

    그때 느낀 건 연기가 정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그가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도다해 역의 천우희 배우는 사기꾼의 가벼움과 그 뒤에 숨겨진 진심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극의 긴장감을 주도했습니다.

    처음엔 복씨 가문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인물이지만, 사실은 13년 전 화재 사고로 복귀주와 깊게 얽혀 있다는 게 드러나면서 이야기의 층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관계를 드라마에서는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구조로 풀어갑니다.

    동상이몽이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목적과 감정을 품고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복 씨 가족은 도다해를 능력 회복의 구세주로 오해하고, 도다해는 재산을 노리며 접근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심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과정은 정말 몰입감이 넘쳤습니다.

     

    특히 복귀주가 죽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자꾸 과거로 돌아가려 했던 그 마음이 저에게는 가장 애절하게 다가왔습니다.

    과거 회귀가 희망이자 동시에 그를 현실에서 더 멀어지게 만드는 잔인한 형벌처럼 작동한다는 것이, 제가 보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우울 장애(Depressive Disorder)는 단순한 기분 저하가 아니라 인지, 기억, 동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정신 건강 상태입니다. 여기서 우울 장애란 지속적인 슬픔, 무기력, 집중력 저하 등이 2주 이상 지속되는 임상 진단 기준에 해당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국내 우울증 유병률은 성인 기준 약 5.7%로, 이는 결코 낮지 않은 수치입니다(출처: 국립정신건강센터).

    드라마가 이 소재를 감각적이면서도 과장 없이 다루었다는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힐링 드라마로서의 완성도와 관전 포인트

     

    직접 시청해 보니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 비선형적 서사(Non-linear Narrative) 구조가 특징입니다.

    비선형적 서사란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퍼즐처럼 맞춰지는 서술 방식을 말합니다.

    처음엔 조금 헷갈릴 수 있지만 사건의 논리보다 인물들의 감정 흐름에 집중하면 훨씬 수월하게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12부작이라는 비교적 짧은 분량 안에서 가족 치유, 로맨스, 미스터리를 촘촘하게 엮은 점도 인상적입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무빙' 같은 스케일 있는 히어로물을 기대하고 접근하면 다소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외부인인 도다해를 통해 서로를 다시 보게 되는 과정 자체가 이 드라마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복 씨 가문이 능력을 되찾는다는 건 단순히 초능력의 회복이 아니라, 오랫동안 외면해 온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저 역시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현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판타지 설정이 신선하면서도, 그 안에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이 드라마를 자신 있게 추천합니다.

     

     

     

    참고: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