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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콘크리트 마켓
    영화 콘크리트 마켓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황야》의 뒤를 잇는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세 번째 작품, 드라마 《콘크리트 마켓》이 공개되었습니다. 김숭늉 작가의 인기 웹툰 《유쾌한 왕따》를 원작으로 삼아,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 속 시장 권력과 인간 군상의 심리전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작품입니다. 평소 디스토피아 장르를 즐겨 보던 제게 이 작품의 공개 소식은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세 번째 축, 《콘크리트 마켓》의 세계관

     

    《콘크리트 마켓》은 원인 불명의 대지진으로 대한민국 문명이 종말한 이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극소수의 생존자들이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끈질기게 살아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고, 이들은 '콘크리트 마켓'이라 불리는 황궁아파트 902호를 중심으로 모여듭니다.

    화폐가 완전히 무력화된 이 세계에서는 통조림이 새로운 가치 척도가 되는 물물교환 체제가 작동하며, 겉보기에는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독재자의 착취에 찌든 공간입니다.

     

    이 작품이 콘크리트 유니버스 내에서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전작들이 다루지 않은 '그다음 단계'를 조명하기 때문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대지진 직후 아파트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집단을 이루고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면, 《콘크리트 마켓》은 그 혼돈의 시기를 지나 아파트 내부에서 나름의 시장 시스템과 지배 계급이 공고해진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진화된 단계를 보여줍니다.

     

    저는 화면 속 황궁아파트 902호의 어두컴컴한 풍경을 보면서, 전작에서 영탁(이병헌 분)이 보여주었던 광기 어린 집단주의가 이번 작품에서는 자본주의적 착취 형태로 진화한 버전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습니다.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단순한 반복이 아닌 유기적인 확장임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드라마 속 통조림을 둘러싼 권력 투쟁은 결국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며, 이 작품은 재난 서사를 빌려 왜곡된 자본주의의 민낯을 정면으로 해부하는 디스토피아 장르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박상용 독재 체제와 태진·철민·희로의 충돌

     

    《콘크리트 마켓》의 서사를 이끄는 핵심 축은 세 인물의 팽팽한 갈등 구도입니다.

    콘크리트 마켓의 독재자인 박상용 회장(정만식 분)은 재난 상황을 기회로 삼아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두 청년 태진(홍경 분)과 철민(유수빈 분)을 충성 경쟁시켜 자신의 배를 불립니다. 세상은 무너져 개판이 되었음에도 박상용은 이들의 노력을 착취하며 마켓을 지배하고, 상인들은 착취와 횡포에 지쳐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이 이어집니다.

     

    태진이 늘 그랬듯 상납금을 걷으러 다니다 죽은 상인들과 사라진 상납금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사라진 상납금의 범인은 다름 아닌 소녀 희로(이재인 분)였습니다. 빈 통조림만 가지고 있던 희로는 시장을 털어먹을 목적으로 마켓에 잠입했던 것으로, 태진이 이를 눈치채고 마켓 출입을 통제하면서 희로는 갇히게 되고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희로라는 인물은 단순한 도망자가 아닙니다. 뛰어난 지략으로 물가와 시장 경제를 뒤흔들며 박상용의 독점 체제에 균열을 내는 게임 체인저로, 극의 거대한 판도를 바꾸는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반면 태진과 철민은 박 회장의 밑에서 상납금을 걷는 하수인으로 시작하지만, 희로의 등장과 상인들의 비극을 마주하며 점차 심리적 균열을 겪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독재 체제에 복무하던 이들이 인간성과 생존 사이에서 흔들리는 과정은 이 작품이 단순한 재난 오락물을 넘어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서사임을 증명합니다. 두 청년이 겪는 도덕적 고뇌를 지켜보며, 저는 '만약 내가 저 극한의 상황에 처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도 했습니다.

     

     

     

    황궁마켓의 경제 개연성 문제, 디스토피아 장르의 한계인가

     

    《콘크리트 마켓》을 둘러싼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작품 내부의 경제 메커니즘에 집중됩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황궁마켓은 공급은 없는데 자꾸 수요는 충족되는 놀라운 경제 시스템"이라는 지적이 쏟아졌고, "무한 생산 스팸"이라는 표현은 이 작품의 경제적 모순을 가장 직관적이고 유머러스하게 꼬집은 일침으로 회자됩니다.

     

    생산 체제가 완전히 붕괴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라면, 시간이 흐를수록 자원은 바닥나고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통조림 한 조각의 가치가 천정부지로 솟아야 정상입니다. 그러나 극 중 황궁마켓에서는 시장이 지속적으로 굴러갈 뿐 아니라, 어디선가 싱싱한 생고기와 계란프라이 같은 신선식품까지 끊임없이 공급되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황궁아파트 902호 지하실에 거대한 비밀 공장이나 농장이라도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기적의 수요·공급 법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처럼 독재자 한 명의 통제하에 부드럽고 풍족하게 굴러가는 시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결국 《콘크리트 마켓》은 '시장 경제의 잔혹함과 인간의 탐욕'이라는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현실적 개연성을 과감히 희생시킨 플롯 아머의 전형적인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황궁마켓이라는 공간과 박상용 회장의 독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원의 고갈이라는 가장 중요한 현실적 제약을 통째로 생략해 버린 것입니다. 스팸은 무한 리필되지만, 시청자들의 몰입도와 개연성은 바닥을 드러내 버린 아이러니한 디스토피아 시장이었던 셈입니다.

     

    《콘크리트 마켓》은 인간의 이기심과 왜곡된 자본주의의 민낯을 날카롭게 해부하는 디스토피아 장르물로서 분명한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그러나 경제적 개연성의 부재라는 치명적인 아쉬움은,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리얼리티를 기대한 팬들에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콘크리트 유니버스의 팬이라면 충분히 빠져들 수 있는 작품이지만, 정교한 세계관 시뮬레이션을 원하는 시청자에게는 분명한 한계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