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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드라마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
    jtbc 드라마 에스콰이어 변호사를 꿈꾸는 변호사들

     

    지각한 지원자가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율림 면접에서 역전 합격했습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또 이런 전형적인 설정인가" 싶었습니다.

    드라마 속 클리셰처럼 느껴졌던 그 면접 장면은 사실 주인공 강효민의 가치관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그런데 강효민이 팔의 소유권 문제에 답하는 순간, 저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화면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갔습니다.

    단순히 법전을 줄줄 외우는 변호사가 아니라, 법이 가진 차가운 논리를 어떻게 사람의 온기로 녹여낼지 고민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법이 상식을 배반할 때, 드라마는 시작된다

     

    강효민이 면접장에서 꺼낸 첫 번째 논리는 물권적 청구권(Property Claim)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물권적 청구권이란 특정 물건이 침해받았을 때 그 소유자가 반환이나 방해 제거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지원자가 "당연히 원고가 팔을 돌려받아야 한다"라고 도덕적인 답을 내놓을 때, 강효민은 법리적으로 완전히 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그녀는 법은 인간의 신체를 소유권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만약 이를 인정한다면 자기 몸에 대한 처분권까지도 전면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법학 교양 수업에서 이와 유사한 논점을 접한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이 "법과 상식은 왜 자주 충돌하는가"를 물었을 때, 저는 멍하니 앉아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교수님의 답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꽤 오랫동안 답답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의 면접 장면을 보며, 법이 왜 인간의 감정보다 논리라는 칼을 앞세워야 하는지, 그 차가운 이면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인 기차 탈선 사례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형법 구성 요건이 충돌하는 고전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윤리의 기준으로 삼는 사상으로, 공리주의적 판단으로는 한 명을 희생해 백 명을 살리는 행위가 당연히 정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강효민은 여기서도 단호하게 "살인죄가 성립한다"라고 답했습니다. 범죄의 구성 요건인 행위, 결과, 고의성이 모두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녀는 위법성 조각 사유(Justification)가 인정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단서도 잊지 않았습니다.

    위법성 조각 사유란 행위가 형식적으로는 범죄 요건을 갖추더라도, 정당방위나 긴급피난처럼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어 결과적으로 위법성이 사라지는 경우를 뜻합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다시금 멈칫했던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옳은 행동이 법적으로는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걸 드라마가 너무나도 냉정하게 짚어냈기 때문입니다. 법이 때로는 우리를 보호하는 든든한 울타리이지만, 때로는 인간의 온기를 완전히 외면하는 차가운 기계일 수 있다는 것을 1화 안에 보여준 셈입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송무팀, 그 선택의 의미

     

    신입 변호사 인덕션에서 모두가 화려한 기업 법무팀을 원할 때, 강효민 혼자 송무팀 지원서를 냈습니다.

    송무팀은 워라밸이 없고 업무 강도가 살인적이며, 선배들조차 기피하는 부서입니다.

    저는 이 장면이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현실적인 순간 중 하나라고 느꼈습니다.

     

    제 사회생활 경험을 떠올려 봐도, 직장에서 "아무도 안 하는 일"을 자처했을 때 처음부터 환영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저 역시 회사에서 부서 내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던 고질적인 민원 처리 업무를 자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느꼈던 막막함과 외로움이 강효민의 표정에서 고스란히 겹쳐 보였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그 고된 경험이 나중에 얼마나 단단한 실무적 기반이 되었는지 지금은 잘 압니다.

    강효민 역시 그 길을 택함으로써, 화려한 대형 로펌의 꽃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변호사가 될 자격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송무팀에서 강효민이 맡은 도시가스 절도 사건은 이 드라마가 단순한 법정 판타지가 아님을 확실히 증명했습니다.

    그녀는 온천 목욕탕의 도시가스 납부 내역을 7년 치 직접 분석하고, 사용량 조작 정황을 포착해 13억 2,327만 원이라는 구체적 피해액을 산출했습니다. 피고 측이 "우리는 영세 소상공인일 뿐"이라고 감정에 호소하며 맞섰을 때, 강효민은 도시가스 회사 역시 매일 검침하는 소시민들의 집합체이며 그들이 입은 손해는 결국 다른 선량한 소상공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고 차분히 반박했습니다. 법전의 문구가 아니라, 의뢰인과 상대방 모두의 삶을 바라본 진정한 변론이었습니다.

     

    에스콰이어가 다루는 사건들은 이런 특징을 가집니다.

     

    • 화려한 기업 소송이나 형사 범죄 대신 우리 주변 개인들의 민사 분쟁에 집중합니다.
    • 법리 논쟁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의뢰인의 삶과 사연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 화려한 변론보다는 현장 조사와 발품이 법정 논리만큼 중요한 무기로 등장합니다.

     

     

     

    정자 멸실 사건이 남긴 묵직한 질문

    법정 드라마에서 '정자 멸실'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것은 꽤 이례적입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야말로 드라마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 석구는 병원 측의 면책 조항에 대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Act on the Regulation of Terms and Conditions) 제7조 1호를 들어 맞섰습니다.

    이 법률은 기업이 일방적으로 만든 계약 조건이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할 경우 이를 무효로 볼 수 있도록 규정한 소비자 보호 장치입니다. 피고용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책임을 면책 조항으로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 논거였습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소규모 분쟁에서 기업의 면책 조항이 소비자에게 과도하게 불리한 경우 이를 무효로 보는 판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법률구조공단).

     

    그런데 석구의 진짜 무기는 법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뢰인의 아내가 화상 사고로 절망에 빠졌을 때 그를 붙잡은 이야기, 결혼 한 달 전 고환암 판정을 받고 마지막 희망으로 보관했던 정자가 병원 실수로 사라진 이야기를 법정에서 당사자 신문(Examination of the Party)을 통해 꺼냈습니다. 당사자 신문이란 소송 당사자를 직접 증인석에 세워 진술을 듣는 절차로, 서류상의 증거만으로 전달하기 어려운 삶의 구체적인 맥락을 법정에 가져오는 방식입니다.

     

    석구가 주장한 특별 손해(Special Damages) 개념도 이 사건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특별 손해란 일반적인 손해 범위를 넘어, 채무자가 사전에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특수한 사정에 의해 발생한 손해를 말합니다. 단순한 경제적 가치 계산이 아닌, 한 부부가 부모가 될 유일한 기회를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손해로 산정한 것입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은 그 법 조문 때문이 아니라, 그 조문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출처: 통계청).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닌 수많은 가정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드라마가 이 소재를 법정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단순한 자극적 소재 선택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묵직한 질문처럼 느껴졌습니다.

     

     

     

    맺음말 : 법의 언어로 사람을 구하는 일

     

    에스콰이어는 매주 판결보다 사람을 먼저 들여다보는 따뜻한 드라마입니다.

    강효민이 발로 뛰며 찾아낸 13억짜리 가스 사용량 조작도, 석구가 법정에서 꺼낸 부부의 눈물 어린 사연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법은 사람을 옥죄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균열이 생긴 곳을 메우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주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때로는 저도 법이라는 단어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며 깨닫습니다.

    법의 언어로 사람을 구하는 일, 그것이 바로 변호사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라는 것을 말이죠.

     

    다음 에피소드에서 또 어떤 일상의 균열을 법정이라는 무대로 가져와 치유할지, 저는 벌써부터 다음 주가 기다려집니다.

    우리 곁의 평범한 이들이 법의 보호 안에서 조금 더 안전하고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밤입니다.

     

     

    참고 : 에스콰이어 드라마 분석 및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