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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에 그냥 법정 드라마 정도로 가볍게 틀었습니다.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 올라와 있기에 주말 저녁 시간을 때우기 위한 용도였죠. 그런데 1화 초반, 초등학생을 살해한 뒤 사체를 훼손하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유기한 범인이 만 14세 미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에서 저는 리모컨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화면 속 아이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대비되는 잔혹한 범죄 사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나는 법적으로 괜찮다'는 듯한 오만한 태도에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사회적 합의를 미루며 외면해 온 현실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올라와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촉법소년 제도, 선의로 만든 법이 어떻게 악용되는가
드라마에서 가장 먼저 충격을 주는 장면은 살인 혐의를 받는 소년 성호가 법정에서 담담하게 진술하는 부분입니다.
"만 14세 미만은 사람을 죽여도 감옥에 안 간다는 말을 들었다"는 그 한 마디가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촉법소년(觸法少年)이란, 형법상 형사미성년자 기준인 만 14세 미만으로,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 대신 소년보호처분을 받게 되는 법적 지위를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이 제도가 아이들의 미성숙함을 고려하여 낙인을 방지하고,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되돌리기 위한 '교화와 선도'를 목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답답했던 지점은, 이 선의의 설계가 현실에서 심각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소년보호처분의 최고형이 '소년원 2년'이라는 현실을 건조하게 제시합니다.
살인에 사체 훼손까지 저질렀는데 법이 줄 수 있는 최대치가 고작 2년이라는 사실은 사법의 기본 원칙인 '형평성'을 흔들어놓습니다.
동일한 행위에 대해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형평성의 원칙이 오직 '나이'라는 기준 하나로 무너지는 구조인 것입니다.
실제로 대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소년부에 접수된 소년보호사건(소년법 위반 행위로 인해 가정법원 소년부에서 재판을 받는 사건)은 3만 건을 넘어섰습니다(출처: 대법원). 드라마 속 판사들이 쏟아지는 사건 속에 매몰되는 모습이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무력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또한, 드라마는 경제적 자원의 차이가 사법 정의를 왜곡하는 현실도 꼬집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딸이 대형 로펌의 변호인단을 꾸려 사건을 은폐하려는 모습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할 아이들이 출발선부터 다르다는 서글픈 현실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장면이 소년법 개정 논의에서 가장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형량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사법 접근성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함께 병행되어야 합니다.
법이 아이들을 놓친 자리, 어른들이 채워야 하는 것
드라마를 보면서 제 생각이 한 번 크게 흔들렸던 순간이 있습니다.
청소년 회복센터 '푸름 센터' 에피소드였습니다. 처음에는 후원금을 횡령한 범죄자로 보였던 센터장 선자가, 실은 그 돈을 입원한 아이의 수술비로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제가 이미 선자를 나쁜 사람으로 단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제 섣부른 판단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성찰을 요구합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재범률(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입니다. 소
년범의 경우, 이 재범률은 아이가 돌아갈 가정환경과 사회적 지지망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법무부의 자료를 살펴보면, 소년원 출원 후 일정 기간 내에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재비행률은 처우의 질과 귀환 환경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출처: 법무부). 즉,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심은석 판사가 소년범들에게 보호자 연계 처우(소년범을 처분할 때 보호자에게도 교육, 상담, 의무 프로그램 참여를 병행하게 하는 제도)를 명령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는다"는 대사는 아이의 일탈이 가정의 방임이나 잘못된 훈육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꿰뚫습니다.
제 경험상, 학교나 사회에서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정작 이를 법적 처분 안에 강제적으로 연결하는 구체적인 구조는 현실에서 체감하기 어려웠습니다. 드라마가 가정의 책임을 법적 테두리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은 매우 혁신적인 시각입니다.
맺음말 :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엄벌과 포용 사이의 균형
저는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 촉법소년 논의가 단순히 연령 하향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범죄의 지능화에 맞춰 처벌을 강화하고 '감옥살이 체험'과 같은 실질적인 경각심을 주는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촉법소년이라는 이유로 웃으며 당당해하는 아이들에게 법의 엄중함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선자의 센터가 사라진 후 아이들이 다시 성매매와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처분 이후의 사후 감독(보호처분을 받은 소년이 사회에 복귀했을 때 재범을 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지도하는 활동)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결국 소년심판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피해자 중심의 사고'입니다.
가해 아이들의 교화도 중요하지만, 그들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피해자들의 아픔이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합니다.
법이 가해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더라도, 그 기회가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소년심판은 보는 내내 불편한 드라마입니다.
화가 나고, 답답하며, 저 자신의 편협한 판단을 반성하게 합니다. 바로 그 불편함이 우리 사회가 소년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촉법소년 문제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이제 드라마를 넘어 실제 소년보호처분 제도와 관련 법 개정 논의를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드라마보다 현실이 훨씬 더 복잡하고,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아이들을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하지 않는 것, 그것이 어른들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