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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미지의 서울
    넷플릭스 드라마 미지의 서울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편견을 꽤 단단하게 쥐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무대 위의 퍼포먼스와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연기는 전혀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tvN 《미지의 서울》 12부작을 끝까지 보고 나서, 그 편견이 얼마나 게으른 것이었는지를 제대로 확인했습니다.

    제가 직접 화면을 보며 느꼈던 감탄과 분석을 통해, 왜 이 작품이 시청자의 마음을 두드리는지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미지의 서울》, 편견을 넘어선 연기의 깊이를 함께 알아봅시다.

     

     

    박보영의 레이어드 퍼포먼스, 1인 4역이 가능한 이유

     

    1인 2역도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는 한 발 더 나아갑니다.

    쌍둥이 미지와 미래를 각각 연기하는 것을 넘어, 미지가 미래인 척 행동하는 장면과 미래가 미지인 척 행동하는 장면까지 박보영 한 사람이 소화합니다. 처음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저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과연 이게 설득력 있게 구현될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이걸 업계에서는 레이어드 퍼포먼스(layered performance)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레이어드 퍼포먼스란 한 배우가 단순히 캐릭터를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캐릭터 안에 또 다른 캐릭터의 감정층을 동시에 겹쳐 표현하는 고난도 연기 기법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미지가 미래인 척하는 장면에서는 미지 본인의 불안과 어색함, 그 위에 미래처럼 보여야 한다는 의식적인 억제가 동시에 얼굴 위에 있어야 합니다. 이게 무너지면 드라마 전체의 개연성이 흔들리죠.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며 느낀 것은, 박보영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된 연기를 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제가 직접 12화를 다 보면서 느낀 건, 박보영이 발성 톤과 호흡 속도만으로도 두 캐릭터를 명확하게 구분해 냈다는 점이었습니다.

    미지는 조금 더 열려 있고 즉흥적인 호흡을 쓰고, 미래는 조여든 발성으로 감정을 앞에서 막아내는 식이었습니다. 이건 보면서 의식하기 전까지는 왜 다르게 느껴지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종류의 차이였습니다.

     

    연기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복합적 자아 표현을 정체성 분열 표현(identity fragmentation acting)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정체성 분열 표현이란 하나의 몸으로 둘 이상의 심리적 자아를 분리하여 관객에게 명확히 전달하는 연기 방식으로, 관객이 의식적으로 분석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두 인물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박보영은 이 기법을 통해, 일부 시청자들이 인위적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역할 교체 설정에 자연스러운 개연성을 부여했습니다.

     

    연출팀도 여기에 힘을 보탰습니다. 미지가 등장하는 장면은 따뜻한 온색(warm tone) 계열 조명을 쓰고, 미래의 회사 씬은 차갑고 건조한 한색(cool tone)으로 처리해 시각적으로도 두 인물의 세계를 분리했습니다. 연기와 연출이 맞물리지 않았다면 이 드라마의 몰입감은 지금의 절반도 안 됐을 겁니다.

     

    박보영 연기에서 제가 특히 주목한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미지와 미래의 발성 톤과 호흡 속도를 일관되게 구분해 캐릭터 변별력을 유지했습니다.
    • 상대 캐릭터를 연기하는 장면에서 감정 밀도를 이중으로 조절하는 이중 레이어 연기를 구현했습니다.
    • 로맨틱 코미디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내면 중심의 감정 연기로 캐릭터 전환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드라마 시청 행태 분석에 따르면, 시청자 몰입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스토리 전개 속도보다 캐릭터 공감도라고 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박보영이 두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분리해 낸 것이 이 드라마의 완주율을 높인 핵심 이유라는 게 저는 꽤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박진영의 비언어적 연기, 침묵이 말보다 무거웠던 순간

     

    사실 저는 박진영 배우에 대한 기대치를 의도적으로 낮추고 봤습니다. 아이돌 출신이 감정이 격하게 쌓이는 장면을 버텨낼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엄마와의 감정신을 보고 나서 그 기우는 제대로 사라졌습니다.

    호수는 상처를 숨긴 인물이라 오히려 대사가 적습니다. 이런 역할일수록 말이 없는 순간에 배우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데, 박진영은 그 빈 공간을 눈빛 하나로 채웠습니다.

     

    이것이 비언어적 연기(non-verbal acting)입니다. 비언어적 연기란 대사 없이 표정, 눈빛, 몸의 미세한 긴장감만으로 캐릭터의 심리 상태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연기 방식으로, 오히려 대사가 많은 장면보다 배우의 기본기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제가 경험한 극 중 호수의 침묵은 어떤 장황한 대사보다 훨씬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해서는 "발성은 되는데 감정 깊이가 얕다"는 평이 많은데, 박진영이 보여준 건 그 반대였습니다.

     

    엄마 역의 장영남 배우, 새엄마 역의 김선영 배우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호흡을 유지했습니다. 이건 딕션(diction) 관리 없이는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딕션이란 발음의 명확성과 음색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능력으로,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에서도 대사가 흐트러지지 않고 또렷하게 전달되는가를 결정하는 연기의 기본기입니다. 박진영은 이 부분에서 확실한 기본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새엄마 김선영에게 마음을 열기까지의 힘겨움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감정을 터뜨리지 않고 꾹꾹 눌러 담아 전달하는 절제된 감정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하게 쏟아내는 것보다 참아내는 연기가 훨씬 어렵다는 걸 아는 시청자라면 이 장면이 왜 유독 묵직하게 느껴지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볼 때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몰입하게 되더군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드라마 산업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미니시리즈 포맷은 시청자 완주율을 높이는 주요 편성 전략으로 꼽혀 있으며, 12부작 이하의 드라마에서는 조연 캐릭터의 서사 완성도가 전체 완성도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되어 있습니다(출처: 문화체육관광부). 장영남과 김선영 두 배우가 각자의 서툰 모성애를 풀어내는 장면들은 주연의 서사를 뒷받침하는 수준을 넘어, 극 전체의 감정 무게를 실질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미지의 서울》이 후반부 일부 설정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 평가를 받는 건, 결국 캐릭터 한 명 한 명에 충분한 서사와 감정이 담겼기 때문일 겁니다. 로사 식당 관련 비중이 과했다는 의견에는 저도 어느 정도 동감하지만, 12부작 안에 로맨스·힐링·가족 서사를 모두 담으려 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 자체는 납득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전문 용어를 더 언급하자면, 이 작품은 앙상블 연기(ensemble acting)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앙상블 연기란 주연 배우뿐만 아니라 조연, 단역까지 모두가 유기적으로 호흡을 맞추어 하나의 완성된 무대를 만드는 협업적 연기를 뜻합니다. 박보영과 박진영의 호흡은 물론, 장영남, 김선영과의 감정적 교류는 이 드라마를 단순한 멜로를 넘어선 가족 드라마로 격상시켰습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면, 박보영과 박진영을 비롯한 배우들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볼 만합니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모른다"는 이 드라마의 명대사처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을 건네는 드라마였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이렇게 과하지 않게 전달하는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제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남을 따뜻한 작품이었습니다.

     

     

     

    참고 : 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 최종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