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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시작되면 늘 같은 고민을 합니다. '뭐 볼까?'라는 단순한 질문이 때로는 행복한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지독한 콘텐츠 선택 장애로 이어지곤 하죠. 이번에는 김은숙 작가에 수지, 김우빈이라는 황금 조합을 보고 저는 고민 없이 《다 이루어질지니》를 켰습니다. 그런데 밤을 꼬박 새워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게 맞나?"였습니다.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제가 직접 경험하며 느낀 솔직한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대사 소화력이 드러낸 것 : 배우와 작가의 궁합 문제
드라마를 보면서 처음 이상하다는 감각이 든 건 대사 장면이었습니다. 수지 배우의 연기 자체는 나무랄 데 없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그녀가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은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김은숙 작가 특유의 오글거림을 담은 로맨틱 코미디(로코) 대사들이 수지 배우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뭔가 어색하게 걸렸습니다.
이건 연기력 문제가 아니라 배우와 작가 사이의 케미스트리(Chemistry) 문제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케미스트리란 배우의 말투와 표정이 작가의 문장이 가진 고유한 리듬감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정도를 말합니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도 작가의 문체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대사가 생명력을 잃고 겉돌게 됩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카메오로 등장한 송혜교 배우 덕분에 더 명확하게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송혜교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 같은 작가의 대사인데 질감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무뚝뚝한 말투에 코믹한 의도가 절묘하게 올라타면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더 아쉬운 건 김우빈 배우였습니다.
《상속자들》에서 오글거리는 대사를 멋지게 살렸던 배우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기억에 남는 대사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건 배우가 아니라 대본 완성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실제로 서사 완성도를 평가하는 지표 중 하나인 내러티브 밀도(Narrative Density)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내러티브 밀도란 단위 시간 안에 얼마나 의미 있는 서사가 압축되어 있는지를 나타내는 척도인데, 이 드라마는 초반 설정 설명에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한 탓에 정작 캐릭터가 빛나야 할 장면에서 밀도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이 작품처럼 스타 작가와 스타 배우가 만났을 때 시청자의 기대치가 폭발하는 현상을 후광 효과(Halo Effect)라고도 부릅니다.
후광 효과란 특정 요소(스타 작가, 유명 배우)에 대한 긍정적 인상이 전체 평가를 끌어올리는 심리 효과인데, 이 작품은 그 높은 기대치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 클리셰와 PPL이 무너뜨린 몰입감
1화는 솔직히 기대감을 충분히 줬습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면서 느낀 건, 1화의 설정 배치는 꽤 영리했다는 겁니다.
램프의 정령이 소원을 들어준 뒤 마지막에 그 인간을 제거한다는 반전 설정, 사이코패스 소녀를 선하게 키우려는 할머니의 서사, 인간의 타락을 증명하려는 지니의 내기 구도까지, 초반에는 분명히 "이건 다르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2 화부터였습니다. 이후 전개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전형적인 클리셰(Cliché) 패턴을 거의 그대로 밟아갔습니다.
여기서 클리셰란 장르 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시청자가 다음 전개를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드는 공식화된 서사 패턴을 말합니다. 젊어진 할머니 캐릭터 미주의 우여곡절과 희생, 그리고 퀴어적 요소도 어떤 비틀기 없이 예상대로 흘러갔습니다.
연출과 CG 면에서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두바이 촬영 장면과 천사·지니의 전쟁을 묘사한 애니메이션은 볼 만했지만, 전반적인 시각적 볼거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는 일반적으로 PPL(간접광고)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은 드라마 흐름을 끊는 PPL이 꽤 자주 등장해서 몰입을 반복적으로 방해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들에서 예전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는데, 넷플릭스에서 그 불편한 느낌을 다시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총평 : 그럼에도 볼 가치는 있는가?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완전히 볼 가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직접 다 보고 나니 다음과 같은 장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비주얼의 향연: 수지와 김우빈의 비주얼은 그 자체로 시청 이유가 됩니다.
수지 배우는 《건축학개론》부터 《이두나!》, 이번 작품까지 첫사랑의 이미지를 아주 매력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킬링 타임용: 깊은 감정 소비 없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콘텐츠로는 충분합니다.
여가 시간의 동반자: 연휴처럼 긴 여가 시간에 무념무상으로 틀어놓기 적합합니다.
한국 드라마 산업에서 판타지 로코 장르의 흥행 공식에 대한 분석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청자의 감정 이입도와 서사 개연성이 시청 지속률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여러 연구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또한 OTT 플랫폼 환경에서 PPL 노출 빈도가 시청자 몰입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도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있습니다(출처: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다 이루어질지니》는 5점 만점에 2점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이미 넷플릭스를 구독 중이라면 연휴에 틀어놓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를 위해 구독을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이전 판타지 감성을 기대하고 보신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라리 《도깨비》를 다시 보시거나, 비슷한 판타지 로맨스 중 서사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먼저 탐색해 보시길 권합니다. 볼 만한 콘텐츠를 다 소진하고 구독 기간이 남을 때, 시간 때우기용으로 보시면 딱 맞습니다.
여러분은 이번 연휴에 어떤 작품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혹시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 작품만의 '한 방' 을 느끼신 분이 계실까요?
참고 영상: 유튜브 콘텐츠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