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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드라마 귀궁
    sbs 드라마 귀궁

     

     

    사극에 귀신이 들어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막연히 "조금 어색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귀궁》은 그런 우려를 첫 화부터 시원하게 날려버렸습니다.

    무녀와 이무기, 그리고 궁궐 악귀라는 세 축이 맞물리면서 "이게 정말 우리가 알던 사극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르게 서사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마지막 회를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에서 '팔척귀'의 서늘한 기운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귀궁이 '판타지 사극'으로 성립한 배경

     

    《귀궁》은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 문법 안에서 매우 탄탄하게 설계된 작품입니다. 여기서 퓨전 사극(fusion historical drama)이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오컬트, 판타지, 로맨스 등 현대적인 장르 감각을 혼합한 드라마 형식을 말합니다.

    《철인왕후》, 《환혼》 같은 작품들이 이 장르를 대표하는데, 《귀궁》은 그 계보를 잇는 수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윤성식 감독은 《철인왕후》를 통해 사극과 현대적 감각을 뒤섞는 탁월한 연출력을 증명했고, 윤수정 작가는 《왕의 얼굴》을 통해 왕실 정치극 서사에 정통하다는 평을 받아왔습니다.

    이 두 거장이 만났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일단 믿고 보자"는 신호였습니다.

    제가 직접 시청하면서 느낀 건, 연출이 사극의 엄격한 형식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오컬트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절대 놓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균형이 생각보다 훨씬 정교했습니다.

     

    드라마의 세계관도 꽤 촘촘하게 짜여 있습니다.

    귀신의 종류만 해도 야광귀, 수살귀, 팔척귀 등 한국 민속 신앙에서 가져온 존재들이 각자 다른 속성과 역할로 구분됩니다.

    특히 '팔척귀'는 단순한 악귀가 아니라 선황 때부터 왕실을 노려온 거대한 존재로, 드라마 내내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이 흡사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에 경기석(Gyeonggi-seok)이라는 설정이 더해지는데, 이는 왕의 애체에 숨겨진 신비의 돌로, 팔척귀를 다루는 퇴귀 의식에서 핵심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이런 설정 하나하나가 세계관의 깊이를 만들어 준다는 것을 보면서 실감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4년 발표한 방송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오컬트와 사극을 결합한 퓨전 장르는 OTT 플랫폼을 중심으로 2022년 이후 꾸준히 편성이 늘어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귀궁》이 이러한 시장의 흐름 한가운데에서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보여준 건 분명합니다.

     

     

     

    세 배우의 앙상블이 만들어낸 진짜 긴장감

     

    솔직히 말하면, 이건 제 예상 밖이었습니다.

    《귀궁》을 보기 전까지는 '육신 쟁탈'이라는 설정이 자칫하면 가벼운 코미디로 흐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진지해져 몰입을 깨지 않을까 걱정했거든요. 그런데 세 배우의 합이 그 우려를 완전히 털어냈습니다.

     

    육성재 배우는 윤갑과 강철이라는 두 인격을 한 몸으로 연기해야 하는, 사실 배우 입장에서 굉장히 까다로운 역할을 맡았습니다.

    올곧은 검서관 윤갑의 말투와 눈빛에서, 순식간에 이무기 강철의 냉기로 전환되는 순간들이 대사 없이도 명확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이걸 다중 인격 연기(multiple personality acting)라는 관점에서 보면, 억양, 시선 처리, 호흡 속도까지 캐릭터마다 달리 설정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다중 인격 연기란 한 배우가 동일한 육체 안에서 복수의 인격을 연기하는 고난도 퍼포먼스로, 관객이 대사 외의 비언어적 신호로 인격 전환을 인식할 수 있어야 성립합니다. 육성재 배우는 그 어려운 숙제를 훌륭히 해냈습니다.

     

    김지훈 배우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몸은 윤갑인데 혼은 강철인 상황과, 강철이 본체로 등장하는 장면 사이에서 두 배우가 한 인물의 양면을 나누어 표현하는 구조가 이 드라마의 가장 독특한 연기 실험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설정은 편집에서 작은 오차만 있어도 시청자가 큰 혼란을 느끼기 쉬운데, 《귀궁》은 그 경계를 아주 정교하게 유지했습니다.

     

    김지연 배우의 여리는 드라마의 감정 중심을 잡는 핵심입니다.

    강단 있는 무녀의 모습과 첫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면서, 강철의 혼이 깃든 윤갑을 대하는 장면에서는 복잡한 감정을 한꺼번에 소화해 냈습니다. 인간사에 깊이 관여할수록 업을 쌓아 악귀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수살귀에게 듣는 장면은, 여리라는 인물의 비극성을 극대화한 순간이었고 저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깊이 쓰였습니다.

     

    세 배우가 만들어낸 앙상블의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육성재 : 윤갑과 강철 사이의 비언어적 인격 전환 연기
    • 김지훈 : 본체 강철로서의 압도적 존재감과 윤갑 몸속 강철 간의 온도 차이 연출
    • 김지연 : 판타지 설정 속 감정선의 설득력을 끝까지 유지한 중심 연기

     

     

     

    귀궁과 킹덤, 두 드라마가 닮은 이유

     

    《귀궁》을 보면서 넷플릭스 《킹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제가 직접 두 드라마를 연달아 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표면적인 소재는 전혀 다르지만 구조적으로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킹덤》은 좀비라는 서구 장르 문법을 조선 궁궐이라는 공간에 이식한 작품이고, 《귀궁》은 한국 민속 신앙의 악귀를 같은 공간에 풀어놓은 작품입니다. 두 드라마 모두 폐쇄형 서사 구조(closed narrative structure)를 채택했습니다.

    폐쇄형 서사 구조란 탈출 하거나 외부에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고립된 공간을 배경으로, 인물들이 내부에서 위협을 해결해야 하는 이야기 방식을 말합니다. 궁궐이라는 공간이 그 구조에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초자연적 존재가 정치권력과 결탁하거나 이용된다는 점입니다.

    《킹덤》에서 권력자들이 생사역을 정치 도구로 활용하듯, 《귀궁》에서도 대비와 영매 풍산이 팔척귀를 이용해 영인대군을 왕위에 올리려는 음모를 꾸밉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느낌, 두 드라마가 공통적으로 남기는 여운입니다.

    제 경험상 이 구조가 사극 장르에서 가장 강력한 서사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차이도 분명합니다. 《킹덤》이 생존 스릴러에 무게를 두고 처절한 액션으로 치닫는다면, 《귀궁》은 퇴마 의식과 로맨스 서사를 번갈아 배치하며 감정의 호흡을 조절합니다. 특히 여리가 강철에게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몸주신이 되어달라고 간청하는 장면, 그리고 구병시식의 대가인 가섭 스님과 함께 최후의 '퇴마 어벤저스'를 결성하는 흐름은 《귀궁》만의 색깔입니다.

    여기서 구병시식(Gubyeong-sisik)이란 병마를 쫓기 위해 신에게 음식을 올리고 귀신을 달래는 무속 의례로, 《귀궁》에서 팔척귀를 불러내고 몰아내는 핵심 의식으로 사용됩니다.

     

    방송통신위원회 시청률 및 콘텐츠 이용 행태 조사에 따르면, OTT와 방송을 병행 이용하는 시청자일수록 장르적 완성도와 세계관 설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방송통신위원회).

    《귀궁》이 두 시청층 모두에게 긍정적 반응을 얻은 배경에는 이런 설정의 촘촘함이 있다고 봅니다.

     

    《귀궁》은 '재미있는 사극 판타지'를 넘어서, 한국 민속 세계관을 진지하게 장르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아직 퓨전 사극 특유의 세계관이 낯설다면 《귀궁》부터 시작해도 좋고, 《킹덤》이나 《환혼》을 이미 재미있게 보셨다면 《귀궁》을 다음 선택지로 올려놓아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벌써 다음 시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고: 귀궁 하이라이트 영상
    귀궁 관련 위키 자료